봄날의 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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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녀가쓰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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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28. 02:48



순식간에 잠들었다가 기차가 멈추는 느낌에 잠이 깨니 피렌체란다. 내리기 직전 프랑스의 할머니는 아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다는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여자의 얼굴을 찍어갔다. 다정하고 깊은 포옹과 'Bon Voyage'라는 인사를 나누고는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로마였다. 폴란드 할머니와 나란히 기차에서 내려 카푸치노 한잔을 함께 마셨다. 헤어지기 전 폴란드에서 태어난 파리에서 20년을 살았다는 할머니는 여자를 꼭 끌어 안고는 등을 토닥였다. Bon Voyage라며 손 흔들고 돌아서는데 슬그머니 눈이 뜨거워졌다.

그 밤을 무어라 추억해야 할 지 모르겠다.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고도 마음 여는 법을 몰라서 몇 년을 곁에 둔 사람에게도 '너는 두고두고 언제나 먼 사람'이라는 말을 듣던 여자였는데 단 한번에 마음이 열려 눈이 뜨거워지다니. 여행자로 만나 다시 볼 일이 없어 마음껏 친절했고 기꺼이 웃었던 것일까. 대체 서울에서는 무엇이 겁나 벽을 쌓고 숨었던 것일까. 뜨거워진 눈으로 기차역을 나서며 여자는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나는 훨씬 더 외롭고 조금 더 따뜻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고.


기차역을 나서니 로마는 찬란한 봄의 아침.

돌아가면 떠나오기 전과는 다른 표정으로 살게 될 것을 여자는 깨닫고 있었다.


정현주, <스타카토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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